본인의 절정비기인 재화룡법(再華龍法)이 본인의 은둔과 더불어
세상에서 그 의기를 펼쳐보지도 못한 채 사라져버리는 것을 염려
하여 이렇게 붓을 든다. 특히나 요즘처럼 기개가 부족하고 나약하
여 상대를 제대로 고르지도 못하고 대적도 못하는 젊은 이들이 많
은 시기에 재화룡법을 널리 전수하여 명랑사회를 이루려 하련다.
재화룡법을 익히려면 먼저 '리사이굴'로 들어가야 한다. 리사이굴 안
에는 모든 잡다한 만물이 다 있지만 하찮은 것부터 아름다운 것까지
모두에게 눈길을 줄 수 있는 정신을 길러야 하며 '네것이 내것이고 내것이
네것이다'라는 무소유주(無所有主)의 기공을 함양해야 한다. 이것은
재화룡법을 시작하기 위한 기본이 되기도 하지만 재화룡법의 초절정
결장인 제십장 아내삼기(我內三技)를 익히기 위해서 반드시 지속적으
로 수련해야 하는 덕목이다. 아아.. 아내삼기... 이 무시무시한 장법은
단지 일장을 내뻗기만 하여도 한꺼번에 세가지 기술이 상대를 제압
하여 영원히 상대를 내 손안에 들어오게 만드는 전대미문의 무공이다.
재화룡법을 익히려고 하는 자는 누구나 이 제십장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나 그 수련과정이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하여 아직까지 제대로 장법을
익혔다고 하는 자를 본적이 없다. 이제야 본인이 이 아내삼기를 구사할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그 위력을 확인해 볼 길이 없다.
제일장 타라가기(他喇歌技)
이는 공격술이라기 보다 일종의 염탐술이라고 볼 수 있는데 기를 모으며
상대의 헛점을 파악하는 기술이라 하겠다. 리사이굴에서의 수련을 착실히
마쳤다면 타라가기에 필요한 경공술은 기본이고 상대가 나타날 곳마다
따라다니기 위한 집요함과 치밀함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장소가
대학누(大學樓)가 되던지 압구중원(鴨鷗中院)이 되던지 가리지 않고 따라
가기 위하여 타라가기를 구사한다면 상대를 놓치지 않고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때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서 도화도의 황약사가 탄지공
(彈指功)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을 무렵... 중원에서도 황약사의 명성에
버금가는 무림고수가 있었으니... 그 이름이 바로 이마사(二馬篩)였다.
이마사... 이는 이자가 한꺼번에 두 마리의 말을 탄다하여 스스로 붙인
이름으로 그 정력과 무공을 가늠해 볼만한 대목이다. 범인이 어찌 두마리의
말을 한꺼번에 탈 수 있으랴... 또한 이마사의 반지공(般指功)은 왠만한
무림고수도 만만히 보지 않았던 그만의 특기였다. 반지공...얼마나 많은
상대가 이 반지공에 무릅을 꿇었던가.... 특히 외공을 가미한 금반지공과
은반지공의 현란한 조화는 상대가 반지공을 받았을 경우에 사지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게하는 극악무도한 기공이었다. 하지만 절대 강자란 없는 법...
몇년간을 이마사와 겨뤄오던 오륜마(五輪馬)의 반납술(反納術)에 결국 이마
사는 무릎을 꿇고 만다. 당시 반지공을 제압할 수 있는 무공은 반납술 밖에
없다고 알려져는 있었으나 이를 제대로 구사하는 자가 없었다. 하지만 오륜
마는 몇년간 이마사와 겨뤄오면서 틈틈히 반납술을 연마하여 결국 이마사
에게 치명상을 입히게 된다. 오륜마의 반납술... 반지공을 제압한다는 것
에서 알 수 있듯이 반납술에 당한 사람은 혈도가 막히고 내장이 터져서 차마
인간으로 볼 수 없는 처참한 모습으로 즉사하게 된다. 그나마 이마사는 무공
을 수련한 몸이라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지만 이 때 입은 상처로 폐인의 지
경에 이르게 된다. 이마사는 그 생김새의 기괴함으로 인하여 한 때 조방의
태상장로였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나 조방의 부인으로 인하여 확인할 길은
없었다. 어쨌든 그가 이 때만큼 기괴한 몰골이 되었던 때가 있었단 말인가!
이런 이마사가 재화용법(財貨用法)을 연마하여 재기에 오른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할 무렵... 본인은 타라가기를 연마하고자 이마사의 행로에 함께 몸을 싣게
된다. 역시 재화용법을 수련하는 자답게 그가 암약하는 활동지는 압구중원과
방배동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역시 타라가기는 이런 이마사를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엽기적인 기공이었다.
[편집후기]
한번 마두도구(魔杜刀狗), 매두호구(妹頭好狗), 무노(無老), 사대천왕(四大天王)
을 끌어들여 보까? 아니야...위험해...